초선의 김성식 의원이 한나라당 정책위 부위원장이 됐을 때 의아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원외 시절이던 2003년, 당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제2정책조정위원장을 역임했던 공인된 정책통이다. 보통은 재선·3선급 의원이 맡던 자리였으니 보통 파격이 아니었다.
18대 국회 전반기에 ‘당론 반대 자판기’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비주류가 이제 당론을 만드는 자리에 갔다. 김 의원은 부위원장 취임 첫 ‘작품’으로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 이슈는 한나라당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할 만큼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다. 청와대·정부와 내용 조율은커녕 사전에 알리지도 않았다는 이 겁 없는 초선 의원을 6월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정책 얘기만 할 거야. 정치 이야기는 아는 게 없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기여입학제 반대, 추가감세 철회 등 정부·청와대의 정책 기조와 정면충돌하는 의견을 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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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김성식 의원은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모두 경제지표 자랑만 했다고 비판했다. |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가 한창이다. 나가봤나?
나가보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알고 있다. 절실한 목소리다. 일부 사회단체가 가서 정치화됐다느니 하는 대목은 본질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견딜 수 없는 지경이다.
등록금 부담 완화에 연간 2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등록금을 말 그대로 절반으로 낮추려면 한 해 6조원이 든다. 소득 수준별로 해서 중·저소득층의 등록금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시키는 데는 2조원이면 된다.
재원 대책은?
등록금 부담 완화하자니까 돈이 어디서 나오냐고 묻는 분들,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SOC 추진할 때는 그런 얘기 했나. 1년에 2조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사실 정책 의지에 달린 문제다. 당이 정책 제안을 해서 민생 예산으로 10조원을 정부 예산편성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교육, 보육, 일자리, 국민생활비 부담 감소, 복지 사각지대 해소. 5개 목표에 대해 10조원이고, 등록금은 그중 하나다.
왜 세금으로 사학재단을 먹여살리느냐는 반론도 있다.
맞다. 그래서 재정 지원을 받는 대학에 운영 투명화와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다. 교육비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내놓도록 해서 등록금 의존율을 확인할 것이다. 명문 사학은 적립금도 많고 투자도 많다. 오히려 중·하위권 대학은 적립금이 낮고 등록금 의존 비율도 높다. 감정적으로는 재정 투입보다 사립대더러 등록금 내려보라고 요구하는 게 편할 수 있지만, 명문 사학이 아니면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국가의 재정 투입과 대학의 자구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 재정 투입을 인센티브로, 재정 철회를 페널티로 사용하면 대학 개혁까지 끌어낼 수 있다.
80%가 대학에 가는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고, 오히려 대학 가기 더 쉽게 만드는 제도라는 지적도 나오는데.
물론 좋은 지적이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사회였다면 진학률이 이렇게까지 높아지지는 않았겠지만,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면서 대학진학률은 떨어질 줄 모른다. 근본 해법은 일자리다. 그렇다고 해서 일자리 늘리고 대학생 비율을 낮춘 다음에야 등록금 완화하자? 그게 국민의 시름에 귀 기울이는 정책인가?
등록금 정책 발표 때 청와대·정부와 조율하지 않았나?
조율은 물론 사전 고지도 안 했다. 정부는 언론 발표 보고 알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평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당이 주도하는 정책이 미흡하다는 게 국민 생각이다. 새로운 지도부가 고민하는 내용은 당이 국민의 신음소리를 듣겠다는 것이고, 그걸 정책으로 만들어서 능동적으로 청와대에 주자는 것이다. 보통 여당이 하는 방법은 아니다. 앞으로는 당정 협의를 거칠 것이다.
정부 쪽 반응은?
한나라당이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을 2006년에 만들 때, 이를 주도한 사람이 이주호·박재완이다. 묘하게 두 사람이 관련 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가 있다. 잘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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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혜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악수하는 이)가 6월10일 대학생들과 등록금 문제 간담회를 가졌다. |
김황식 국무총리가 등록금 해법의 일환으로 기여입학제 도입 검토를 시사했다.
분명하게 반대한다. 신입생 선발에 기여입학제는 우리 사회에선 용인하지 않는다. 정원 외 선발이라도 반대다.
18대 국회 초반에 감세와 대기업 위주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해 ‘당론 반대 자판기’라는 별명도 붙었다. 당론을 만드는 자리에 와보니 어떤가.
책임감이랄까 이런 게, 솔직히 죽을 지경이다. 여론 수렴 다 하면서 정책을 책임 있게 만들어야하니까 품이 굉장히 많이 든다. 힘들어죽겠다. 그래도 다행히 정책 작성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해왔다.
임기 초 외로운 소장파 시절에 비하면 한나라당이 변했다는 느낌이 드나?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변했다는 걸 보여줄 리트머스 시험지가 두 가지 있다. 첫째가 등록금 정책이고, 둘째가 추가감세 철회다. 한나라당 내에서 이미 충분히 감세를 했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추가감세는 철회될 것으로 본다. 일부는 싱가포르·홍콩·타이완보다 법인세율이 높다고 하는데, 비교 대상 국가가 아니다. 타이완은 비교할 수 있지만, 하나 정도는 우리보다 낮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랏빚이 96조원이다. 재정건전성을 고민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소득세 감세 철회에는 찬성했지만 법인세 감세 철회는 반대했다.
법인세 감세도 철회될 것으로 본다. 변화를 보여줄 핵심은 법인세다.
지난해 전당대회 후보로 나섰지만 쇄신 바람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7월 전당대회에서 당 쇄신 바람이 불 수 있을까?
그때는 조직 선거에 막혔다. 지금은 다를 것이다. 투표권자가 21만명으로 늘어난 것은 큰 변화다. 이제는 조직 선거가 쉽지 않게 됐다. 레이스가 시작되고 변화와 쇄신에 대한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면 판이 달라질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그 다음은 주자들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지난 전대랑은 다를 거다. 아니, 그래야 한다. 이번에도 정신 못 차리면 국민이… ,아이고.
다시 전당대회에 나올 생각은?
정책 쇄신이 지금 목표고, 정책을 디자인하는 것이 재미있다.
7월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이 리더십 쇄신에 성공하고 정책 쇄신이 계획대로 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반전은 아니고 겨우 견디겠지. 우리 국민은 늘 집권 세력이 기대한 만큼 못했을 때 응징했다. 핵심이 뭐냐. 참여정부는 경제성장률 낮았나. 아니다. 그때부터 양극화 문제가 핵심이었다. 지표 경제가 아니라 내 주머니 경제가 나아지길 바라는데 참여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경제지표 자랑만 했다. 옛날에는 고용이 동반된 성장을 했기 때문에 복지가 취약해도 견뎠는데, 지금은 아랫목에 불 땠다고 기다리면 윗목까지 따듯해지는 시대가 아니다. 기다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아랫목과 윗목을 연결하는 파이프가 깨진 건 없는지 점검도 하면서 가야 할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