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게시날짜 : 2014-08-20
“여야 재합의안대로라면 특검후보추천위 7명 중 정부·여당 선임이 과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37일째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47)는 2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야의 재합의안대로라면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 7명 중에서도 여당, 정부에서 선임한
인사가 과반”이라며 “진상규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특검추진위 구성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특검후보추천위는 국회 추천 인사 4명과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7명으로 구성되며 여기서 특검 후보자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한다. 여야는 19일 국회 추천인사 4명 중 여당 몫 2명은 새누리당이 유족 동의를 얻어 선임하는 안에 합의했다.
무릎 꿇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오른쪽)이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김영오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씨는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37일째 단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씨는 “특검이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구성된다면 역대 참사와 마찬가지로 실무자만 처벌하고 책임자는 전혀 처벌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넘어가는 행태가 반복될 것”이라며 “(이런) 특별법은 ‘안전
사회’ 건립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사회를 위해 쓰러질 각오로 싸울 생각”이라며 단식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한 달 넘게 곡기를 끊은 김씨는 지치고 쇠약한 기색이 뚜렷했다. 서울 광화문광장 천막 안 등받이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던 김씨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등산용 지팡이를 꼭 짚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인터뷰 중 몸의 균형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잡은 자세였다.
김씨 다리는 성인 남성의 손바닥 절반 정도로 가늘어졌다. 말을 꺼내면 눈꺼풀이 떨렸다. 호흡을 고르며 간신히 한마디씩 이어갔다.
김씨는 페이스북에 청와대 앞에서 겪은 일도 적었다. “오늘(19일) 청와대로 갔습니다. 청와대 행사로 일반인 다 통제한다고 경복궁 돌담길 중간부터 막더군요. 무슨 행사냐니 대외비래요. 알고 보니 새누리당 중앙위원 오찬행사였어요. 오후에 다시 갔어요. 청와대 분수에서 길을 못 건너게 막네요. 외국인 관광객, 일반인 다 가는 길을요. 37일 굶은 제가 무슨 위해가 되나요. 2시간을 서 있었지만 계속 막고 비키지 않았습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2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일부.
김씨는 20일 다시 청와대 쪽으로 갔다. 오후 3시 분수대 앞에서 다시 2시간을 대치했다. 오후 5시20분쯤 청와대 민원실에 들어갔다. 대통령을 만난 것은 아니다. 면담요청서를 제출한 뒤
구급차를 타고 농성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신청서를 내고 “대통령을 만나면 특별법을 해달라고 무릎 꿇고 빌겠다. 국회의원들을 믿었지만 이제 대통령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통령의 무응답과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고립되는 현상에 대한 서러움도 썼다. “대통령이 바빠서 광화문 단식하는 데 갈 수 없다고. 이게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요? 제가 국민이 아닌가요? ‘유가족충’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응원해주는 시민들이 더 많다. 오늘 광장만 해도 그렇지 않으냐”고 했다
광화문광장 농성단 규모는 전날 오전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세월호 가족들이 안산에서 특별법 재합의안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장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찾아왔다. 전국여성농민대회에 참석하러 서울을 찾은 함안·임실·제주 등 여성농민회원 60여명이 광화문광장에 먼저 들러 특별법에 서명했다. 천막을 향해 “우리는 살(쌀) 지키러 왔어예. 아버님은 진실을 지키이소”,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단식에 동참하는 영화인들도 광화문광장에 남았다. 이날 오전에는 연극연출가 채승훈씨(59) 등 연극인 10여명이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릴레이 단식에 참여했다.
인터뷰 도중 한 어린이가 “아저씨 힘내세요”라고 외치자 김씨는 살며시 웃으며 손을 들어 화답했다. 김씨는 단식의 고통에도 눕지 않는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오후 8~9시가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다. 요즘은 잠드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며 “많은 시민들이 응원해주는데 제가 누워 있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으로 세계 언론과 시민들도 특별법 문제를 알게 됐다. 국민이 하나가 돼 정치권을 압박하면 특별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이날 페이스북 일기는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저 좀 힘들어져도 괜찮아요. 제가 정말 두려운 건 제가 잘못되는 게 아니라 유민이가 왜 죽었는지 못 알아내는 거니까. 제대로 된 특별법 통과되면 그때 기쁘게 밥 먹을 거예요. 그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국민의 힘만이 저의 단식을 멈출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202207025&code=91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