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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4일 금요일

지리산에 간 MB, “개발이 덜 됐어” - 김봉선 칼럼

원본게시날짜 : 2007/12/23 16:54



지난 8월이다.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가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다. 한나라당 경선 후 산자락인 구례에서 대선 승리를 위한 의원 연찬회를 마친 다음날이다. 일행이 GPS로 대선일을 상징하는 ‘1219고지’를 찾아내 그 자리에 섰다.
일망무제의 산야를 둘러보던 이명박 당선자가 한마디 했다. “(노고단은) 아직 개발이 덜 됐어.” 취재기자가 뒤에 전한 한 구절이다. 이당선자의 뇌리에 청계천이나 한반도 대운하가 떠올랐던 게 아닐까. 이당선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글라스가 어울려 보이는 것도 필자의 그런 상상력 때문이리라.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31일 당 합동연찬회를 마친 뒤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고 있다.



청계천은 대선기간 내내 이당선자의 ‘아이콘’이자 ‘아우라’였다. 유세의 첫 출발지를 청계천으로 잡았고, 마지막 유세도 그곳에서 마무리했다.
당선 확정 후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청계천이다. 경제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당선자에게 ‘어떤 경제인가’라는 물음이 쏟아졌지만 “해봐서 안다”는 답이면 족했다. 실천력에 대한 믿음이었고 성과물에 대한 평가였다. 그런 민심은 한 언론인의 표현대로 ‘함박눈처럼’ 표가 돼서 그의 머리 위로 내렸다. 예견했던 걸까. 이당선자는 올초 사석에서 청계천을 찾았다가 환영 인파에 떼밀리면서도 ‘이·명·박’이라는 이름 석자가 불려져 뿌듯했노라고 했다.


선대의 過 청계고가 뜯어놓고

청계천이 이당선자의 ‘과거’라면 대운하는 ‘미래’가 될 듯싶다. 10여년전부터 대운하를 구상했고 유럽의 운하들을 시찰하면서 굳혔다고 한다. 대운하에 대한 애착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한 측근은 “(건설을) 해본 사람의 감(感) 같은 것”이라고 했다. 경험칙상 ‘대박’을 직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소리가 흘러나오니 대운하는 이제 대세가 돼가는 것 같다. 물길이 호남과 영남, 충청을 아우르고, 한강에서 만나는 큰 그림이니 국민의 가슴속에 ‘또 하나의 청계천’을 심는 대역사일 수도 있겠다.

한데 필자는 박수칠 수가 없다. 청계천을 보자.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면 1970년대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개발의 ‘과(過)’, 즉 개발지상주의의 병폐다. 수조원의 복구비와 연 2000억원에 이른다는 관리비는 후대들에겐 기회비용이다.
청계천의 새모습에 감탄할 뿐 콘크리트로 덮였다가 뜯겨진 청계천의 ‘속살’을 잊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선대들이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청계천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대로 흐를 수 있었을 일이다.

대운하로 돌아가보자. 질을 떠나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십수조원의 공사비를 들이면 건설경기는 부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하나만은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했으니 가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공약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부작용이 후대로 넘겨진다면 사정은 다르다. 대운하의 취지는 물류에서 관광으로, 또 다목적으로 그때 그때 바뀌고 있다. 실익 논쟁이 여전하고 환경 재앙이나 건설현장의 하도급 비리 만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후대들이 또 ‘대운하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후대도 ‘대운하 복원’ 나설까

대운하 논쟁을 보면 ‘연 7%의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만들어 세계 7대 경제대국에 든다’는 ‘7·4·7 공약’도 꺼림칙하다. 개발지상주의와 쌍둥이인 성장지상주의 그늘이 드리운 듯해서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특별히 떨어진 적은 없다. 4%대면 OECD 회원국들의 평균 성장률을 웃돈다. 대기업들은 엄살을 부리지만 외환위기를 넘으면서 성장했고, 서울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환율 영향이 크지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도 진입했다. 반면 젊은이들은 ‘알바’ 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88만원 세대’로 내몰렸고, 비정규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들에겐 미래도 없다. 전례없는 다자구도 속에서도 이당선자가 압승한 이유다. ‘7·4·7’에 매달릴 경우 양지와 음지의 차가 더 커지면서 이들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할 수 있다. 바로 성장의 ‘덫’이다.

한두 번 찾은 동유럽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각종 국가경제 지표로 따지면 우리보다 한참 처지지만 ‘사람들’의 삶은 윤택했다. 주말이면 공연장은 예약손님으로 가득차고, 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수백년을 함께해온 다양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은 기를 죽였다. 성장의 혜택을 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신발전체제’를 당선 일성으로 내놓은 이당선자가 대표공약도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 그것이 진짜 ‘실용’이다.

〈김봉선 /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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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kimbongseon.khan.kr/32

MB정권의 서프라이즈

원본게시날짜 : 입력 : 2011-11-02 18:35:48수정 : 2011-11-03 14:08:26

1696년 영국의 국왕 윌리엄 3세는 모든 국민에게 집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내도록 했다. ‘창문세(窓門稅·window tax)’는 텅 빈 국고를 채우기 위한 꼼수였다. 창문 6개 이하는 면제, 7~9개는 2실링, 10~19개는 4실링, 20개 이상은 8실링을 부과했는데 거의 모든 집이 납세 대상이었다. 시민과 의회는 거세게 반발했지만 국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민들은 6개의 창문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흙을 바르거나 판자로 가리고 벽돌을 쌓아 막아버렸다. 사태는 갈수록 악화됐다. 고집불통 윌리엄 3세는 일부러 창문을 없앤 집에 벌금 20실링씩을 물리라고 명을 내렸다. 사람들은 아예 창문이 없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엊그제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 본 에피소드다. 가뜩이나 햇빛도 잘 안나는 영국에서 시민들은 통풍까지 안되는 집에 살며 정신적 우울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우울하고 힘들기는 우리도 매한가지다. <서프라이즈> 제작진은 이런 것을 찾으러 멀리서 헤맬 것 없다. 지금 우리 현실이 딱 생생 서프라이즈다.

10·26 서울시장 선거는 민심과 동떨어진 집권세력에 대한 엄혹한 심판이었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국정쇄신을 다짐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선거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이 맨먼저 한 일은 2008년 광화문 사거리에 ‘명박산성’을 쌓아 불통의 상징 인물로 꼽히는 전 경찰청장을 경호처장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민심 이반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대통령실장은 주저앉히고, ‘4대강 전도사’로 알려진 교수를 국립환경과학원장에 임명했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는커녕 모욕을 준 것이다. 집안의 소나 말이 울어댄대도 뭔일인가 싶어 요리조리 살펴볼 것이지만, 이 정권엔 시민들의 아우성이 우의(牛意) 마의(馬意)만도 못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이런 게 바로 서프라이즈감이다.

대통령이 길을 잡아주니 종아리를 걷어야 할 가신들은 얼굴이 환해졌다. 집권당 대표가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다”라고 말장난을 한 것도 그 동네 정서를 반영한 얘기일 것이다. 20대 69%, 30대 75%, 40대 66%가 등을 돌리고 서울시 선거구 48개 중 41곳에서 참패했음에도 1주일이 지나도록 반성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쇄신을 다짐하는 사람도 없다. 고작 내놓은 대책이란 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명망가를 영입하겠다”는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수평적 관계에서 하루 수백만명이 자율적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SNS 세계를 기술자 한두 명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얘기다. 소셜네트워크를 드라이버와 펜치로 구부렸다 펼 수 있는 구리선 같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또 하나의 서프라이즈다.

2007년 국민이 BBK, 위장전입, 도곡동 땅 등 온갖 의혹의 먼지 구덩이 속에서도 이 대통령을 뽑아준 것은 도덕성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범한 이 정권 4년 동안 대통령이 특별관리한다는 52개 생필품의 소위 ‘MB 물가지수’는 22.6% 치솟았고, 가계소득은 거꾸로 15% 감소했다. 나랏빚은 92조원이 늘어나 이 정권이 끝나더라도 4인 가족 한 가구당 760만원의 세금을 더 내 갚아야 한다. ‘747’(연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경제규모 7위)이란 ‘뻥 공약’은 경제성장률 3.1%, 국민소득 2만579달러, 경제규모 세계 15위로 정확히 반토막 난 성적표가 나왔다.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손가락질했던 참여정부 5년 평균 성장률 4.3%에도 못미치는 점수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내 임기 중에 경제위기가 온 것이 다행”이라며 여전히 경제 전문가연(然)하고 있다. 트위터 세상에선 이런 정신나간 말들만 모아 ‘유체(幽體)이탈 화법’이라며 놀리고 있다. “MB정부에서 오르지 않은 두 가지는 남편 월급과 아이 성적뿐”이란 냉소도 유행한다. 밑바닥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TV 뉴스는 이런 얘기를 전하지 않는다. 1%의 탐욕에 분노하는 ‘점령하라’ 시위가 세계 82개국 1500여개 도시에서 한날한시에 열렸지만, 친여 보수언론은 서울 여의도 시위를 좌파의 시비로 닦아세웠다. 대한민국 99%의 집에서 한숨과 비명이 터져나왔던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야 보수언론들이 그동안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았던 20~40대가 마치 어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분석이니 뭐니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이런 소극(笑劇)이 없다.

검찰은 한명숙 무죄에 고개를 쳐박기는커녕 거꾸로 “법원이 표적판결했다”고 삿대질하는 마당이다. 이 정부 들어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등 정권의 비위에 맞춰 기소했다 무죄가 난 사건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도 검찰이 반성하거나 책임졌다는 얘기는 없다. PD수첩 사건은 무죄를 받고, 오히려 MBC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서프라이즈. 정말이지 ‘세상에 이런 일이…’라 할 만한 깜짝 놀랄 얘깃거리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 17세기 영국 국민은 창문에 흙칠이라도 했지만 우린 뭘 할 수 있는가. 그나마 내년에 총선·대선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102183548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