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게시날짜 : 2007/12/23 16:54

청계천은 대선기간 내내 이당선자의 ‘아이콘’이자 ‘아우라’였다. 유세의 첫 출발지를 청계천으로 잡았고, 마지막 유세도 그곳에서 마무리했다.
당선 확정 후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청계천이다. 경제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당선자에게 ‘어떤 경제인가’라는 물음이 쏟아졌지만 “해봐서 안다”는 답이면 족했다. 실천력에 대한 믿음이었고 성과물에 대한 평가였다. 그런 민심은 한 언론인의 표현대로 ‘함박눈처럼’ 표가 돼서 그의 머리 위로 내렸다. 예견했던 걸까. 이당선자는 올초 사석에서 청계천을 찾았다가 환영 인파에 떼밀리면서도 ‘이·명·박’이라는 이름 석자가 불려져 뿌듯했노라고 했다.
원문 : http://kimbongseon.khan.kr/32
지난 8월이다.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가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다. 한나라당 경선 후 산자락인 구례에서 대선 승리를 위한 의원 연찬회를 마친 다음날이다. 일행이 GPS로 대선일을 상징하는 ‘1219고지’를 찾아내 그 자리에 섰다.
일망무제의 산야를 둘러보던 이명박 당선자가 한마디 했다. “(노고단은) 아직 개발이 덜 됐어.” 취재기자가 뒤에 전한 한 구절이다. 이당선자의 뇌리에 청계천이나 한반도 대운하가 떠올랐던 게 아닐까. 이당선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글라스가 어울려 보이는 것도 필자의 그런 상상력 때문이리라.
일망무제의 산야를 둘러보던 이명박 당선자가 한마디 했다. “(노고단은) 아직 개발이 덜 됐어.” 취재기자가 뒤에 전한 한 구절이다. 이당선자의 뇌리에 청계천이나 한반도 대운하가 떠올랐던 게 아닐까. 이당선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글라스가 어울려 보이는 것도 필자의 그런 상상력 때문이리라.

▶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31일 당 합동연찬회를 마친 뒤 지리산 노고단을 오르고 있다.
청계천은 대선기간 내내 이당선자의 ‘아이콘’이자 ‘아우라’였다. 유세의 첫 출발지를 청계천으로 잡았고, 마지막 유세도 그곳에서 마무리했다.
당선 확정 후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청계천이다. 경제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당선자에게 ‘어떤 경제인가’라는 물음이 쏟아졌지만 “해봐서 안다”는 답이면 족했다. 실천력에 대한 믿음이었고 성과물에 대한 평가였다. 그런 민심은 한 언론인의 표현대로 ‘함박눈처럼’ 표가 돼서 그의 머리 위로 내렸다. 예견했던 걸까. 이당선자는 올초 사석에서 청계천을 찾았다가 환영 인파에 떼밀리면서도 ‘이·명·박’이라는 이름 석자가 불려져 뿌듯했노라고 했다.
[관련기사] 이명박의 동분서주
선대의 過 청계고가 뜯어놓고
청계천이 이당선자의 ‘과거’라면 대운하는 ‘미래’가 될 듯싶다. 10여년전부터 대운하를 구상했고 유럽의 운하들을 시찰하면서 굳혔다고 한다. 대운하에 대한 애착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한 측근은 “(건설을) 해본 사람의 감(感) 같은 것”이라고 했다. 경험칙상 ‘대박’을 직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소리가 흘러나오니 대운하는 이제 대세가 돼가는 것 같다. 물길이 호남과 영남, 충청을 아우르고, 한강에서 만나는 큰 그림이니 국민의 가슴속에 ‘또 하나의 청계천’을 심는 대역사일 수도 있겠다.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소리가 흘러나오니 대운하는 이제 대세가 돼가는 것 같다. 물길이 호남과 영남, 충청을 아우르고, 한강에서 만나는 큰 그림이니 국민의 가슴속에 ‘또 하나의 청계천’을 심는 대역사일 수도 있겠다.
한데 필자는 박수칠 수가 없다. 청계천을 보자. 뿌리를 거슬러올라가면 1970년대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개발의 ‘과(過)’, 즉 개발지상주의의 병폐다. 수조원의 복구비와 연 2000억원에 이른다는 관리비는 후대들에겐 기회비용이다.
청계천의 새모습에 감탄할 뿐 콘크리트로 덮였다가 뜯겨진 청계천의 ‘속살’을 잊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선대들이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청계천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대로 흐를 수 있었을 일이다.
청계천의 새모습에 감탄할 뿐 콘크리트로 덮였다가 뜯겨진 청계천의 ‘속살’을 잊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선대들이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청계천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그대로 흐를 수 있었을 일이다.
대운하로 돌아가보자. 질을 떠나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십수조원의 공사비를 들이면 건설경기는 부양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하나만은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했으니 가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공약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부작용이 후대로 넘겨진다면 사정은 다르다. 대운하의 취지는 물류에서 관광으로, 또 다목적으로 그때 그때 바뀌고 있다. 실익 논쟁이 여전하고 환경 재앙이나 건설현장의 하도급 비리 만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후대들이 또 ‘대운하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부작용이 후대로 넘겨진다면 사정은 다르다. 대운하의 취지는 물류에서 관광으로, 또 다목적으로 그때 그때 바뀌고 있다. 실익 논쟁이 여전하고 환경 재앙이나 건설현장의 하도급 비리 만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후대들이 또 ‘대운하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말인가.
후대도 ‘대운하 복원’ 나설까
대운하 논쟁을 보면 ‘연 7%의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만들어 세계 7대 경제대국에 든다’는 ‘7·4·7 공약’도 꺼림칙하다. 개발지상주의와 쌍둥이인 성장지상주의 그늘이 드리운 듯해서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특별히 떨어진 적은 없다. 4%대면 OECD 회원국들의 평균 성장률을 웃돈다. 대기업들은 엄살을 부리지만 외환위기를 넘으면서 성장했고, 서울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환율 영향이 크지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도 진입했다. 반면 젊은이들은 ‘알바’ 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88만원 세대’로 내몰렸고, 비정규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들에겐 미래도 없다. 전례없는 다자구도 속에서도 이당선자가 압승한 이유다. ‘7·4·7’에 매달릴 경우 양지와 음지의 차가 더 커지면서 이들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할 수 있다. 바로 성장의 ‘덫’이다.
한두 번 찾은 동유럽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각종 국가경제 지표로 따지면 우리보다 한참 처지지만 ‘사람들’의 삶은 윤택했다. 주말이면 공연장은 예약손님으로 가득차고, 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수백년을 함께해온 다양한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은 기를 죽였다. 성장의 혜택을 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신발전체제’를 당선 일성으로 내놓은 이당선자가 대표공약도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 그것이 진짜 ‘실용’이다.
〈김봉선 / 정치부장〉

원문 : http://kimbongseon.khan.kr/32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