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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2일 금요일

[기자수첩] 녹색만 들어가면 전부 이명박정부 공?

입력 : 2011.08.12 10:35



11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녹색성장정책, 교육과 과학기술의 현장 변화를 가져와’라는 제목의 14장짜리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8·15 경축사를 통해 발표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정부가 3년 동안 활발히 추진했고, 그 결과 의미있는 성과들이 도출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08년 1조4000억원이던 녹색 R&D 투자를 2012년 2조8000억원 수준으로 두 배 늘릴 예정이고, 교과부도 같은 기간 3666억원이던 녹색 분야 R&D 투자를 4520억원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늘린 투자의 효과가 벌써 나오기 시작한 걸까… 과학기술 연구는, 특히 교과부가 주도하는 기초·원천분야 연구개발은 보통 수년에서 수십년 동안 연구를 진행해야 성과가 나오기 때문에 이런 의문을 갖고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자료에 제시된 성과들을 보니 혹시나 하던 마음이 역시나로 바뀌었다. 교과부는 2010년 3월 경남 하동화력발전소에 준공한 건식 이산화탄소 포집 플랜트를 대표적인 성과로 맨 앞에 넣었다. 이 연구는 2002년부터 진행된 것으로, 2006년 이미 핵심 장치인 건식흡수제를 개발하고 50시간 연속실험에 성공했다. 9년짜리 장기 과제의 마지막 3년이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추진한 기간에 포함돼 있다고 이명박 정부의 성과라고 자랑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다음에 소개된 성과는 더 황당하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개발한 무동력 정수장치가 아프리카와 몽골 등 식수가 부족한 곳에 지원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화석연료를 안 쓰는 친환경 기술이니 녹색기술이 맞고, 좋은 일을 하는 데 쓰였으니 박수를 칠만 한 성과다. 하지만 이 장치의 초기 모델은 2006년 개발돼 캄보디아에 제공됐다. 전기 대신 자전거 페달을 쓰는 무동력 모델도 정부가 녹색성장을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2008년 이미 개발돼 케냐에 공급됐다. 연구진은 지금도 민간기업 등의 후원과 요청이 있을 경우 이 장치를 만들어 빈곤한 국가에 제공하고 있지만, 연구개발은 마무리된 지 오래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녹색성장 정책의 성과가 아니다.

담당자에게 물었다. 이게 왜 이명박 정부의 3년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냐고. “연구개발이란 게 원래 성과가 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녹색과 관련 성과를 다 제출하다 보니 그렇게 들어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제목과 첫 문장은 이렇게 썼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녹색성장정책’은 ‘우리나라의 녹색과학기술개발정책’으로, ‘지난 3년간’은 ‘지난 10년간’으로 바꿔서 말이다.

대통령도 이런 식의 눈속임으로 녹색성장 정책을 국민에게 홍보하는 것은 바라지 않을 듯하다. 기자가 알기로 녹색성장 정책의 열매를 이명박 정권이 아닌 다음 정권이 누릴 것이란 사실은 청와대에서 더 잘 알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녹색성장 정책의 성과를 임기 중 보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애국심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는 이런 홍보는 안 하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혹시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고 싶어서 그랬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답이 명확히 나오는 과학기술 갖고 과장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현장의 과학자들은 이런 일을 볼 때마다 뒤에서 실소를 금치 못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을 챙기는 사람은 따로 있다더니 딱 그모양이다. 언제까지 관료들의 이런 구태를 봐야만 하는 걸까…


원문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12/20110812007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