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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30일 화요일

[류근일 칼럼] 사학법, 자유민주세력의 시험대 - 2005년 12월 27일


황우석 쇼크와 폭설에 파묻혀 사학법 문제가 신문 지면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황우석 소동은 이치대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고 눈 피해는 보전하고 재건하면 극복할 수 있지만 사립학교는 한 번 사학인(私學人)들의 손을 떠나면 영 되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사학법 문제야말로 이 나라의 명운(命運)을 가를 2006년 원단(元旦)의 최대 쟁점이 아닐 수 없다.

강행처리된 사학법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하는 ‘이론’ 싸움은 실상 부질없는 입씨름일 뿐이다. 원래 ‘이론’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말해도 말이 되는 것이고 저렇게 말해도 말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론’이라는 것은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중요한 것은 ‘정당화의 명분’에 불과한 ‘이론’이 아니라, 전교조 등 그쪽 진영이 한사코 사학법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것, 그래서 전교조 같은 것을 거부하는 진영으로서는 한사코 그것을 막으려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먹고 먹히는 거대한 정치투쟁이라 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를 누가 장악하느냐의 쟁탈전, 그 쟁탈전의 한 중요한 대목이 바로 사립학교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으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정권을 먹고, 국회를 먹고, 헌법재판소를 먹고, 내년 여름에는 대법원을 먹고, 그 전에 사립학교를 먹고, 서울을 엿먹이고, 한·미 동맹을 흔들어 놓고, 대한민국을 온통 친일파(親日派)의 나라로만 색칠해 놓고, 대기업들을 겁주고 때리면서 저들은 한국의 공공부문과 시민사회의 모든 진지(陣地)들을 하나하나 먹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혁명’이 착착 진행되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이 나라를 귀중한 자산으로 아껴온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앉아서 당한 꼴밖엔 안 되었다. 야당도 그렇고 민간부문도 그렇고, 상대방이 턱 앞에 다가오도록 도무지 싸움다운 싸움 한 번 안 해본 채 발가벗기고 만 꼴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제정신이 든다는 것인지, 이렇게 싸울 생각을 안 해 가지고서야 한낮에 길거리에서 맨몸으로 발가벗겨진다 해도 할 말이 있을 턱이 없다.

이래서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사람들, 특히 종교계와 사학인들은 이번 사학법 문제에 그들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과거 유신 시절에 독재에 항거하던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온몸을 던져서 싸웠다. 1980년대의 운동가들도 목숨을 걸고 싸운 끝에 오늘날 정권을 잡았다. 김영삼씨, 김대중씨도 야당인으로서 목숨을 걸고 싸웠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수호세력, 야당, 사학인, 종교계라고 해서 이런 이치에서 제외될 수 없다. 한국 정치에서는, 그리고 우리 시대 같은 난세(亂世)에서는 목숨을 던지는 자만이 이길 수 있다. 전교조가 속한 진영은 40년 동안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런 그들을 상대로 똑같이 목숨을 던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싸움이 된다는 것인가?

사람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죽기로 작정함으로써 오히려 영원히 살게 되는 수가 있다. 유신 권력에 저항한 지학순 주교, 함석헌 선생, 김재준 목사가 그랬다. 그런데 왜 지금은 얼치기 수구좌파 실권파를 상대로 그런 주교, 지사(志士), 목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이 점에서 사학법 문제는 대한민국 수호 진영에 주어진 결정적인 시험의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들이 과연 이 나라를 지키고 향유할 만한 자격과 능력과 정신을 갖춘 사람들인지, 그리하여 그들이 진정 그럴 수 있는 투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이것을 계기로 판가름날 것이다.

종교계와 사학인들은 이미 선언상으로는 최후의 마지노 선(線)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정말로 자신을 던지는 투사와 신념인의 행렬이 실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온몸을 던져 싸우려는 자세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역사의 승자가 될 수 없다. 종교계와 사학인들이 과연 ‘노무현시대의 정치범’이 될 각오로 맞설 수 있을지, 사학법 파동은 그래서 이 시대 자유민주 수호 진영의 시련이자 시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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